메아리 저널

지나친 지역화는 나쁘다

주변에 이리 저리 소프트웨어 지역화를 하시는 분들이 많이 보여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봤다. 아 물론 여기서 지역화라 함은 흔히 "한글화"라 하는 작업을 말하는 거다. (좀 더 정확한 용어는 "한국어화"일 것이고, 좀 더 일반화된 용어가 바로 "지역화"겠지.)

한 가지 예로 최근에 KDE 번역팀이 KDE 번역을 하면서 옛날 번역을 모조리 걷어 낸 사건을 들 수 있겠다. 먼 옛날에 있던 KDE 번역의 예시를 들어 보자. (페레멘 감사…)

  • This is not a local file. ⇒ 이 것은 울 안에 있는 파일이 아닙니다. (local ⇒ 울?!)
  • Cannot create the find part, check your installation. ⇒ 부분으로 찾게 만들지 못했습니다. 제대로 설치했는지 확인하십시요. (part는 KDE의 컴포넌트 개념. 이걸 "부분"이라 번역한다 쳐도 "부분으로"는 완벽한 오역이다.)
  • Do you want to configure desktop? ⇒ 일터를 설정하시겠습니까? (desktop ⇒ 일터?!!!!!!)

보다시피 각종 오역과, 신종 번역어(?)들이 난무하는 괴상한 번역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걸 번역한 사람들의 노고를 무시하자는 건 아니지만, 보통 사용자들이 이걸 보고 뭐라고 생각할까.

신종 번역어에 대해서는 나도 물론 약간 보충할 얘기가 있다. 처음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번역이 시작되었을 시점에는 번역자들이 일종의 사명감을 갖고, '우리가 처음으로 하는 것이니 선례를 만들자' 정도의 생각으로 새로운 번역어를 쓰기도 했으며, 그 때만 해도 컴퓨팅 용어들이 순 우리말과 한자어, 외래어가 섞여서 정리가 안 된 상태였으니까 말이다. 근데 문제는 그게 제대로 지속되면 나쁠 게 없는데 정체가 되면서 좋은 선례가 아닌 나쁜 선례를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지.

일부 사람들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외래어를 한국어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지금은 사실상 사장되어 버린 "무른모"(software)가 있는데, 뭐 취지야 동감하겠는데 그게 과연 수많은 사람들이 쓰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에서 시도할 만한 것인가 싶다. 분명 이런 운동은 나쁘지 않지만, 사용자의 입장에서 자기가 뭔 말인지 알아 들을 수 없는 번역은 나쁘다.

사실 나만 해도 지금 쓰고 있는 글들에서 적절히 바꿔도 뭔 말인지 알아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용어는 번역해서 쓰고 있긴 하다. 예를 들자면 튜플을 순서쌍이라고 쓴다거나. (솔직히 이거 왜 번역 안 해서 쓰는 건지 더 궁금하다. 귀찮아서? -_-) 하지만 그건 충분한 고려가 필요한 것이고, 급진적으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예를 들어 순서쌍이라는 말은 이미 수학 쪽에서도 쓰이는 말이다. (ordered pair에 가까운 번역어기는 하다. 뭐 상관 없나.) 진정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의 성공을 바란다면 그 소프트웨어가 대중에게 접근성이 높게 하려는 노력도 무시해는 안 되지 않을까.

이런 의미에서 지나친 지역화는 나쁘다. 지나침은 부족함만 못 하듯이.

이 글은 본래 http://mearie.org/journal/2008/01/excessive-l10n-considered-harmful에 썼던 것을 옮겨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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