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저널

나쁜 클리셰

메아리 저널 구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저는 친척 집에 갔다가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서 살고 있습니다. 으어얽… 근데 이 얘기 하려고 한 게 아니었는데.

집에 돌아 오는 길에 이런 글이 현수막에 쓰여 있는 걸 보고 조금 생각을 해 봤다.

깨끗한 자연은 우리 자손에게 물려 줘야 할 유산입니다. (아마도)

물론 우리 가족 중 이 문구를 보고 격하게 반응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조금 생각해 보니 이 문구가 오묘한 뉘앙스를 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 ‘우리의 자손이 존재라도 할 지 누가 알겠어?’
  • ‘자연이 우리가 갖고 있는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가?’
  • ‘설령 재산이라 쳐도, 이렇게 망가진 거 자손한테 줘서 뭐 하려고?’

다시 말해, 이 문구는 애매하게 환경 보호를 주장하면서 그 이유를 이상한 쪽으로 몰고 가는 문구라 할 수 있다. 뭔가 주장하는 바의 초점이 어긋난 것 같지 않은가?

솔직한 심정으로 말해서 내가 환경 운동에 가지고 있는 생각은 비관적이다. 지금까지 써 온 글을 봐 왔다면 내가 인류에 대해 외부적인 요인이 아니더라도 유지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거다. 인류가 내부적으로 망할 가능성을 환경 운동이라는 허울 좋은(비록 좋은 뜻으로 하더라도) 방법으로 감춰 버리는 게 과연 옳은 걸까, 하는 생각 때문에 크게 좋은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저 문구는 좀 아니다 싶다. 주장하고 싶은 걸 말하려면 클리셰(cliché)라도 좀 멀쩡한 걸로 선택했어야지, 어줍잖은 걸 선택해서 뭘 주장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저게 동사무소였나 뭐 그런 명의로 붙어 있던데 “우리는 환경주의자에게 잘 보여야지”라는 생각으로 붙인 건지… (음력) 새 해 벽두부터 뒷맛이 씁쓸했다.

이 글은 본래 http://mearie.org/journal/2008/02/bad-cliche에 썼던 것을 옮겨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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