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저널

찌질이 위계 (Ziziri hierarchy)

어떤 주제에 대해 찌질거리는 사람들은 다양한 단계로 나눌 수 있다. 프로그래밍 언어와 계산 이론 등과 매치해 보면 참 재밌다.

0차 찌질이 (zeroth-order ziziri)

여기에 속하는 사람들은 기술적으로 "찌질이"가 아니며 사실 이 얘기에서 다룰 이유도 없다. 하지만 결국 아래의 모든 것들이 그 주제를 다루기 시작하는 사람들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걸 생각해 보면 "0차"라고 해도 큰 무리는 없을 듯 하다.

1차 찌질이 (first-order ziziri)

  • 빠 (예: 디워 빠)
  • 까 (예: 디워 까)

이 두 부류의 찌질이는 가장 많이 보이는 찌질이이며, 그만큼 격렬하게 충돌한다. 찌질열전 등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여기에 속한다. 노파심에서 첨언하자면 어느 주제에 대해서는 찌질이가 아니지만 다른 주제에 대해서는 찌질이인 사람도 무진장 많다.

2차 찌질이 (second-order ziziri)

  • 빠까 (예: 디워 빠가 국수주의에 물들어 있다고 까는 사람들. 진중권 등.)
  • 까까 (예: 디워 까가 너무 심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있던가?)

흥미로운 점은 "빠빠"와 "까빠"가 빠진 점이다. 그렇다. 2차를 넘어선 고차 찌질이들은 까기만 한다. 애초에 "까빠" 같은 게 있었다면 진작에 "까"로 흡수되었을 것이다. 인간은 원래 까기 위해 존재하는 동물인 고로 이 정도의 비대칭성은 용납할 만 하다.

2차 찌질이에 속하는 일부 사람들은 빠까이면서 까까인 경우도 있다. 그 주제 자체의 언급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경우인데, 이를 "까"에 분류하기에는 그 사람들한테는 좀 실례일 것 같아서(우리는 까가 아니라고! 등등) 그냥 분류에서 빼겠다.

고차 찌질이 (higher-order ziziri)

  • 빠까까 (예: 너는 왜 그냥 언급하지 않으면 될 걸 긁어서 부스럼 만드니? -- 하지만 이미 자신도 언급하고 있음.)
  • 까까까 (이하 상동)
  • 빠까까까
  • 까까까까
  • ad infinitum...

수학에 고차 다항식이 있고 함수형 프로그래밍 언어에 고차 함수가 있듯 찌질이에서도 3차를 넘으면 고자고차가 된다. "고차"라는 이름이 붙은 것들이 사실 알고 보면 다 비슷비슷하듯 (예: 수학에서 "고차 방정식"은 5차 이상을 의미하는데, 이들 방정식은 일반화된 근의 공식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쯤 되면 빠까까와 까까까까를 구분할 수가 없어진다. 여기에 속하는 대표적인 사람으로 수시아가 있다. (다행히 그는 자신도 찌질이라고 인정하고 있으니 찌질이들 중에서는 그래도 정상적인 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초한찌질이 (transfinite ziziri)

고차 찌질이가 더 진화하면 "…까까까"로 끝나는 초한 찌질이가 된다. 수학에서 transfinite라고 할 때에는 기수(cardinal number)와 서수(ordinal number)를 뜻하는데, 어느 쪽 정의를 취하든 흥미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으나 일단 그 얘기는 잠시 접어 두기로 한다.

가장 작은 서수 \omega를 생각하면, \omega차 찌질이들은 다른 하위 찌질이들(1차부터 시작해서)을 모두 깐다. 이 시점에서는 처음에 "빠"로 시작했는가 "까"로 시작했는가의 구분은 사실상 중요하지 않다. 물론 \omega차 찌질이들을 까는 \omega+1차 찌질이도 있으며, 그들을 까는 \omega+2차 찌질이도 있고, 이들을 몽창 까는 \omega+2 = 2 \cdot \omega차 찌질이도 있으며, ..., 이들을 모두 까는 \omega^2차 찌질이도 있고, ... 다음은 상상에 맡긴다.

기수에 기반한 정의는 초한찌질이들이 "까"는 대상의 실체가 이미 흐릿해졌다는 점으로부터 착안할 수 있다. \omega 대신 \aleph_0으로부터 시작하면, \aleph_0차 찌질이들이 까는 대상은 이미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간 상태이며 따라서 \aleph_0+1, \aleph_0+2차 찌질이 등등도 이미 어디부터 시작했는지 모를 찌질한 짓을 계속 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이들은 똑같이 찌질하다는 의미에서 \aleph_0차 찌질이로 일원화할 수 있으며 이들을 까는 찌질이를 2^{\aleph_0} = \aleph_1차 찌질이로 분류할 수 있다. 다르게 정의하면, \aleph_{k+1}차 찌질이는 까는 대상(또는 그 기원)이 \aleph_k차 찌질이인 사람을 가리킨다. 이런 식으로 재귀적으로 정의하면 나중에는 \aleph_{\aleph_0}차 찌질이 따위도 정의되겠지만 머리 아프니까 생략하자.

그 다음은?

초한수 뒤에는 뭐가 있을까? 보통 우리가 자연수를 기반으로 "무한"을 정의할 때는 기수/서수의 정의를 바탕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봤다시피 그 뒤에도 여러 찌질이가 존재하며, 나중에는 논의 자체가 안드로메다로 빠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과연 이 안드로메다스런 상황은 끝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수학적으로는 부랄리-포르티 역설에 따라 불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되어 있다. (즉, 절대적 무한[absolute infinity]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근데 수학자 이름이 부랄같다.)

하지만 물리적 세계에서 우리는 무한을 다룰 수 없기 때문에 한 가지 특이 상태가 존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비찌질이"가 되는 것이요, 다른 말로 하면 모든 초한 찌질이의 최종 진화형은 0차 찌질이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찌질이의 위계는 선형적인 것이 아닌 환형(circular)적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사실 모두 찌질거리며 살 운명인 것이다... 라고 하면 좀 과장이 심하고, "찌질이"와 "비찌질이"의 경계가 사실 그렇게 딱 갈리지는 않는다는 결론이 더 정확하겠다.

결론: 개소리는 정신에 해롭다. 그만 써야 겠다.

이 글은 본래 http://arachneng.egloos.com/1292689에 썼던 것을 옮겨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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