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저널

소통하고자 하면 소통할 수 없다

비교적 오랫동안 개인 웹 사이트도 운영하고 블로그도 운영해 본 입장에서 말하자면, 이것들은 다 귀찮다. 어떻게 만들지도 문제지만 한 번 만들어 놓아도 글을 써 넣는 게 귀찮아진다. 나 같은 경우에는 심심하면 글을 쓸려고 하는 타입이라 이 문제는 해결이 되지만, 더 큰 문제는 사람들의 반응이다. "내가 이 글을 쓰면 사람들은 뭐라고 반응할까?" "내가 쓴 글을 좋아할까? 싫어할까?" "이거 올리면 안 되는 거 아냐?" 등등.

나도 2004년쯤인가에 처음 블로그를 시작했을 때 그랬다.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따위 걱정은 강에 갖다 버려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글을 써 봐야, 영양가 있는 글에는 반응이 덜하고 영양가 없는 글에는 반응이 격렬하다 (논쟁글이라거나 근황글이라거나 아무 의미도 없는 신고글이라거나). 그래서 생겨난 모토가 있다. 소통하고자 하면 소통할 수 없다.

같은 단어로 쓰여 있긴 하지만 앞의 소통과 뒤의 소통은 품질의 차이가 있다. 요컨대, 만약 내가 쓴 글을 정말 감명깊게 여긴다거나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 연락처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알아 내려고 하든지, 그게 귀찮다면 링크라도 해 둘 것이고 나중에 그 링크를 발견했을 때 "아 이 사람이 내 글을 알아 줬구나" 하면서 혼자 미소를 띠면 된다. 굳이 사람들의 반응을 받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해 놓고 무플에 서글피 우는 것보다는 (서글피 울 필요가 없는 문제라는 걸 머리는 아는데 가슴은 모르니까) 훨씬 정신건강에 이롭다. 게다가 댓글 란을 달았을 때의 signal-to-noise 비율, 즉 가치 있는 반응의 비율이 실제로 높아지는 걸 봤기 때문에, 더 가치있는 반응을 얻기 위해서는 오히려 댓글을 닫는 게 효율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나는 댓글이 닫혀 있든 말든 가치있는 답글을 달기 위해 노력하긴 한다. 근데 이거 정말 시간 많이 들더라.)

가끔씩 블로그에 댓글을 구걸하며 별 것도 아닌 글에 이것 저것 다는 사람들을 본다. 이런 사람들은 소통을 원하는 게 아니라 관심, 그러니까 단방향으로의 소통만을 요구하는 것 같다. 소통이 무슨 TCP도 아니고, 내가 SYN 보내면 반대편에서 ACK 보내고 끝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이건 소통이 아니다. 뭐 관심만을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 그리고 그걸 위해서 블로그를 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 같아서 씁쓸하지만 -- 좀 알 건 다 알 만한 사람들까지 그러는 걸 보면 딴지를 걸고 싶어진다.

이 글은 본래 http://arachneng.egloos.com/1895649에 썼던 것을 옮겨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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