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저널

559번째 한글날, 몇 가지 생각.

이번 한글날은 하필 일요일에 겹쳐서 몇몇 사람들이 곤혹스러워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글날 행사를 가야 할 지 교회를 가야 할 지... 등등등) 사실 일요일에라도 겹치지 않으면 공휴일도 아닌 거 사람들이 얼마나 한글날을 인식하고 넘어 갈까 싶은 생각도 가지고 있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비록 빨간 날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우리 말글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생각하고 넘어 갈 수 있다면 그래도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그런 의미에서 노 태우 정권은 손발 싹싹 빌면서 반성해도 시원치 않다.

한글날만 되면 "우리 한글을 사랑합시다" 하면서 한글이 아니라 한국어-_-에 대해서 얘기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옛날에는 그런 사람들을 보고 좀 어처구니 없는 눈으로 바라 보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뭐 그런가 보다 하고 이해가 간다. 한글은 원래부터 한국어를 쓰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었기 때문에 한글과 한국어를 떼어서 생각하기가 상당히 곤란하니까 말이다. (때문에 나는 한글과 한국어를 함께 말하고자 할 때는 항상 "한말글"이라고 말한다.) 그래도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언어다"라는 식의 말은 좀 피해야 겠지만 -,.-

좀 특별한 경우로, 통신어체(이것도 좀 말이 거시기하긴 한데 일단 다들 이렇게 쓰니까 이렇게 쓰기로 하자)를 쓰지 말자는 운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근데 모든 통신어체가 배척되어야 하냐는 질문에 대한 내 생각은 글쎄오시다이다. 나를 IRC 같은 데서 자주 보는 분들이라면 나도 -셈 같은 글투를 만만치 않게 쓴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의사 소통을 방해할 정도의 외계어가 아니라면, 그리고 그 말을 쓰는 사람들이 뭐가 틀린 말이고 뭐가 맞는 말인지 구별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게 한말글을 파괴한다고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 어떻게 보면 한말글의 능력을 (엉뚱한 방향으로) 활용하는 거라고 볼 수도 있는 걸텐데 말이다. 통신어체를 비판하기 전에 이미 우리가 쓰는 말부터 생각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래 기억력이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기도 하지만, 몇 가지 이유로 나는 현행 맞춤법을 완전히 지키지 않는다. 예를 들어서 의식적으로 성과 이름을 띄어 쓴다던지, 띄어 쓰기를 맞춤법에서 규정한 것보다 더 많이 한다던지 하는 것들이다. (계속 이러다 보니까 습관이 되어서 타자 연습 같은 거 하다 보면 띄어 쓰기가 안 된 문장을 치다가 오타가 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단점이라고 해야 하나 이걸 -_-) 이런 것들은 보통 현행 맞춤법의 불합리한 점으로 많이 지적받는 것인데 거기에 대해서는 내 나름대로 기준을 세워서 쓰고 있는 편이다. 어떻게 보면, 현행 맞춤법이 일종의 줏대 같은 게 확실히 잡혀 있지 않다는 느낌도 들고 말이다. (나 혼자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이런 식으로 쓰는 사람들이 많다.) 맞춤법은 확실한 줏대를 바탕으로 거기에 그 기준을 흔들 정도로 중요치 않은 예외를 수용해야지, 예외만 잔뜩 넣어서 사람들이 맞춤법에서 멀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

교회 가야 하고 더 쓰기도 귀찮으니 이 쯤에서 대충 마무리 짓기로 하고, 한말글에 관심 많으신 분들을 위해서 몇몇 사이트를 추천하겠다.

덤으로, 오늘 올블로그를 돌아 다니다가 Pencure 님의 이글루를 만났다. 국어교육과에 다니시는 분인데, 모든 글을 읽어 본 건 아니지만 어떤 면에서는 나랑 생각이 비슷하신 것 같기도 해서 덤으로 추천한다 :)

이 글은 본래 http://tokigun.net/blog/entry.php?blogid=12에 썼던 것을 옮겨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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