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저널

애니 더빙판 반박의 반박의 반박(...?!)

이런 글이 IRC에서 떠돌길래 간단하게 내 입장만 밝혀 둔다. 그냥 쓸 거리가 없어서 이런 뻘글이나 쓰고 있다고 생각하시길 ... (근데 일해야 하는데 나 뭐 하는 거지)

저 사람은 잘못된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다른 잘못된 주장을 끌어 와서 쓰는 것 같다. 토론에서 자폭하기 참 좋은 방법인데, 물론 꽤 많은 사람들이 그 주장에서 의도한 대로 퍼덕이긴 했지만 퍼덕이지 않은 사람조차도 일빠로 내모는 느낌이 들어서 참 뭐시기하다. (사실 소위 "일반인"들은 애니메이션 좋아하는 사람들 보고 싸잡아서 일빠라고 할 것 같은 느낌.)

너무 길고 시간도 없어서 반 정도 밖에 못 읽었는데 그 시점까지의 주장의 근거는 내가 보기에 "더빙은 상대적이다"라는 것 같다. 언뜻 보기에는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아 보인다. 일본어판과 한국어판 사이에는 같은 영상을 사용하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차이만 있을 뿐 더빙의 차이가 질을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라는 논리인 셈.

뭐 그렇다고 치자. 근데 두 애니메이션 사이에는 중요한 관계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시간 차이.

원래 소설이나 만화로 되어 있는 원작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다고 하자. 애니메이션은 물론 보통 원작의 설정과 스토리를 따라가게 마련이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오리지날 스토리가 들어 있거나 아예 새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내 기억으로 뱀부 블레이드가 17화였나 이후로 오리지날이었지...) 이런 걸 보면 애니메이션이 원작에 충실해야 할 이유는 딱히 없는 것 같고 -- 충실하지 않으면 까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취향 탓. -- 오히려 감독이 원작을 어떻게 해석해서 애니메이션에 반영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그럼 일본어판 성우는 뭐시냐? 당연히 감독이 원작을 해석하는 방법에 따라 성우가 결정되는 것이지 그냥 아무나 골라서 연락하는 거겠는가. (실제로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라고 믿도록 하겠다.) 그렇게 해서 형성된 캐릭터의 스타일은 당연히 목소리를 포함하고 있고, 꼭 이 성우여야 한다! 는 아니어도 대강 이런 특징이 나타나는 목소리면 좋겠다! 정도의 예상은 하게 마련이다. 사람들 불평하는 건 한국어판 성우가 그런 기대를 충족 못 시켜서 그런 게 크겠고. (물론 쓸데 없이 까는 인간들도 있는데 정신 멀쩡한 사람이라면 내가 이런 인간들을 대변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는 건 알 것이다.)

말이 너무 장황해진 것 같아서 예시를 들겠다. 원문에서는 스즈미야 하루히는 독불장군 타입의 소녀인데... 라는 주장을 원작에 없다고 까고 있는데, 사실 독불장군 타입의 소녀라는 설정 자체가 일본어 애니메이션에서 새로 등장한, 원작에는 없는 추가된 설정인 것이다. (원래 소설은 그런 사소한? 갭은 알아서 상상해서 읽으라고 있는 것이다.) 원작이 어떻게 하건 애니메이션에서 의도한 그런 설정은 최소한 존중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차이를 "틀리다"라고 하는 사람은 물론 틀려 먹었지만 "다르다"라고 하는 사람까지 까는 건 문제가 있다.

일본어 애니메이션을 한국어로 "번안"하는 것이 아닌, "번역"인 이상, 한국어 판에서 이미 있던 영상에 완전히 다른 목소리를 입혀서 "재창작"하려는 시도는 적어도 번역의 입장에서는 글러먹었다. 차라리 그럴 거면 국내에 잘 안 알려진 애니메이션을 골라서 그냥 재창작을 하는 게 욕 안 먹기에는 더 나을 것 같다. (이런 애니메이션이 더 이상 남아 있는 것 같진 않지만.)

뭐 원래 글 쓴 사람 심정도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겠다. 한국 성우가 일본 성우보다 못하다고 무작정 주장하는 막막한 인간들이 많으니까. 근데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 자체가 맛이 간 상태에서 절대적으로 비교를 하면 성우의 질은 몰라도 스펙트럼은 많이 줄어 든 게 사실이라고 본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 성우가 더빙한 애니메이션이 전반적으로 질이 좀 그렇다 내지는 식상하다 라는 평가는 (비난이 아닌 이상) 자연스럽고 건전한 비판이 아닌가 싶다. (어디서 영상 안 보고 더빙한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진짜 그렇다면 후덜덜.) 방송사들도 그런 비판을 수용할 자세는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다.

자 일 안 하고 놀 수 있는 시간이 다 지났으므로 뻘글은 그만 쓰고 일 하러 가 보겠다. 총총. (10분 후 문단 하나 추가. 맥락이 이상해진 것 같아서...)

이 글은 본래 http://arachneng.egloos.com/634375에 썼던 것을 옮겨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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