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저널

마음 속에서 묻어 버린 두 사람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던 사람들 중에 의견이나 성격이 확 틀어져서 완전히 연을 끊어 버린 사람이 두 명 있다. 오늘은 그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해 보기로 하겠다.

한 사람은 학교 선배(나는 "선배"라는 말을 쓰는 것 자체를 꺼리지만)였고, 다른 한 사람은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편의를 위해 전자는 A, 후자는 B라고 하겠다. (만약 당사자가 이 글을 본다면 서로 누굴 말하는지 잘 알 것이지만, 이 글에 댓글을 달거나 연락을 시도할 경우 무시 내지 처단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흥미로운 건 A나 B나 상당한 논객인데다가 직접적으로 말하는 걸 선호하는 편인지라 나같은 사람은 꽤 부담스럽다. 실제로 A와의 연을 끊게 되는 사건 직전에 A와 B가 온라인 채팅으로 만날 일이 있었는데, 이 인간들끼리 글로 쌈박질하는 게 세기의 대결이었지만 대신 다른 사람들이 미치려고 했다.

내가 알기로 A의 아버지가 학자이신데, 덕분에 A는 비판적 사고를 어릴 때부터 학습해 왔던 모양이다. (듣기로 "아버지와 토론하는 걸 즐겼다"라고 했으니) 비판적 사고가 있는 건 좋은 일이지만, 문제는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그 사고를 못 따라간다는 점이다. 그래, 쉽고 약간 부정확하고 비논리적으로 표현하자면 싸가지가 밥맛이다. 내가 A에게 이런 말을 직접 했다가는 싸가지라는 개념 자체가 글러먹었다고 반응하겠지만, 이건 보통 사람들의 이해를 도모하려는 거니 상관 없다. 하여튼 이 인간이 글 쓰는 걸 보면 글에 칼을 됫박으로 부어 넣는 걸 볼 수 있는데, 이게 정말 말도 안 되는 인간들을 상대할 때는 큰 문제가 안 되지만 그냥 저냥 비판하는 글에는 비수로 작용해서 사람들을 미치게 한다. 최근 A의 블로그에 들어 가 봤을 때 "글이 과격해도 논리적이면 상관 없지만 논리적이지 않은 글은 자근자근 밟아 드립니다" 정도의 뉘앙스를 띤 공지를 봤는데, 역시, 변할 리가 없지 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내가 논리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아주 비논리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어느 정도 논리적으로 생각할 가치가 있는 주제에 대해서는 논리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모든 일에 대해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게 불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내 정신 건강과 육체 건강을 심각하게 해칠 사고 방식이라는 점은 분명하기 때문에 변명은 가능하다. 그런데 이 인간은 어디서 정신력을 긁어 모은 건지 모든 일에 논리성을 부여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 결과로, 나같이 반만 논리적인 사람들은 그랑 논의를 일단 시작하면 너무 피곤해서 하려던 말도 안 나오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나는 아직 내 가치관에 필요한 논거들을 쌓아 올려 가는 과정이고, 생각을 언어로 바꿔 내는 데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리니 최악이었다.) 또한 A가 천성이 호전적인지라 그냥 넘어 가도 될 일에 트집 잡는 것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B는 A보다는 상태가 조금 나았지만, 결과적으로 비슷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A가 (설령 논리적으로는 그게 맞을 지라도) 트집을 잡는 데 선수라면, B는 어느 이상의 친분을 가진 지인에게는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논리성을 요구하는 습관이 있었다. 특히 B는 정치적인 주제에 대해서는 명확한 위치를 요구해 왔지만, 앞에서 말했듯 거기에 그대로 대응해 줄려니 기력이 달려서 대강 대충 얼버무리는 경우가 많았다. 거기에 대한 B의 반응은 차가웠다. 솔직히 무리한 요구를 한 인간이 누군데 나 보고 어쩌라고. 내 이런 특징을 B에게 이해시키려고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고, 심지어 한 번 싸웠다가 화해한 적도 있었지만, 결국 어느 시점에서 내가 포기하고 연을 끊기로 했다. 어쩌면 내가 그 요구에 미동도 안 하고 무시했다면 지금 B와의 관계가 이 정도로 맛이 가지는 않았을 거라는 후회를 해 봤지만, 과연 소심한 내가 그랬을 수 있을까, 하고 쓴 웃음을 짓곤 한다.

한동안 나는 내 가치관에 대해 심각한 회의를 가지고 있었다. 감정적으로는 옳다고 생각하지만 이성적으로는 증거가 너무 부족해서 이대로 주장하면 발리겠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었다. A와 B를 알게 되고 소원해지는 시간동안, 나는 한 가지 논지는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일반적인 인간에게 논리성을 주입하려는 것은 그 자체로 폭력이라는 점.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논리가 필요하고 그렇지 아니한지를 파악하는 것은 논리적인 사고를 하는 것 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이 얘기를 B한테 처음 했을 때 그의 반응은 "너무 중립적인 사고를 하려는 거 아니냐"였다. B는 중립이라는 걸 용납하지 않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다.) 그런데 나는 한편으로 감성적인 사고가 논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잖아? 아마 인류는 이 모순 때문에 멸망할 거야. 아마.

그렇게 나는 A와 B를 내 마음 속에서 묻어 버렸다. A는 지금도 블로그에서 열심히 쌈박질을 하면서, 그렇게 자기가 싫어하던 한국을 떠나서 프랑스 찬가를 부르며 살고 있고, B는 자신의 소신에 맞는 모 소수 정당에서 나름대로 정치활동을 하면서 여전한 글빨을 과시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내 가치관을 뒷받침할 논거를 찾아 다니면서 번민하고 있다. 과연 그들에게는 내가 어떤 인간으로 비쳐져 보였을까? 모르겠다.

추가: 이제서야 B의 최근 논쟁을 조금 보았는데... 씨바 이건 병신도 아니고. 왜 과학 문제에 인문학을 넣으려고 해. 논리적이라는 말 취소. 그냥 지좆대로 씨부리는구나.

이 글은 본래 http://arachneng.egloos.com/1719634에 썼던 것을 옮겨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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