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저널

아직도 남아 있는 평(坪)의 악령

작년 7월 얘기니까 꽤 되긴 했지만, 하여간 '공식적으로' 넓이의 단위 평은 이제 제곱미터로 모두 바뀌었다. 아니, 바뀌었어야 한다.

…과연 바뀌었을까?

나는 작년 7월에 평과 돈을 모두 금지하겠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주변인들한테 과연 그게 가능이나 할까 하고 심각하게 조롱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사람들은 평을 잊지 않았다. 이른바 아직도 남아 있는 평의 악령이다. 예를 들어 보자.

서울 사당동. 이 지역 여야 후보는 약속이나 한 듯 뉴타운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결국 선거 기간 집값이 3.3제곱미터당 최고 300만원 올랐습니다. (출처)

네이버 뉴스에서 아무 기사나 하나 긁어 와 봤다. 뉴타운 헛소리는 뭐 그러려니 한다 해도, 표현이 아주 우습다. "3.3제곱미터당 최고 300만원"? (이해를 못 하시겠다면, 1평이 대략 3.306제곱미터임을 상기해 보시라.)

다시 말해 이 사람들은 단위만 제곱미터로 바꿨을 뿐 실제로는 평의 의미를 그대로 빌려서 쓰고 있는 셈이다. 만약 진짜로 제곱미터만을 사용한다면, 우리는 위의 표현을 "제곱미터당 최고 90만원"이라고 썼어야 할 것이다. (계산하기도 어렵지 않다. 3.306의 역수가 대략 0.3이니 0.3을 곱하면 끝이다.)

이런 기사들이 굳이 검색만 하지 않아도 넘쳐난다. 평소에 심심해서 네이버 뉴스를 애용하는 (물론 그 논조에는 꽤 비판적이지만) 나 같은 경우, 단언컨대 '제곱미터'라는 단어 앞에 3.3이라는 '마법의 수'가 붙지 않는 경우를 한 번도 못 봤다. 기사부터 이런 모양이니 모델하우스 바깥에 95.87제곱미터 식으로 누가 봐도 이건 평이다, 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는 숫자가 사라질 리가 없다.

산업자원부가 진짜로 평을 뿌리 뽑겠다고 마음 먹었다면, 이런 것들도 당연히 단속해야 마땅할 것이다. 95.87제곱미터 같이 눈에도 잘 들어 오지 않는 값 대신에 (가격 정할 때 그러듯) 99제곱미터, 119제곱미터 식으로 제곱미터에 맞게 넓이를 정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야 하고, 언론 등에도 이런 지침에 대해서 충분히 주지를 시킬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제곱미터는 1제곱미터 단위가 아니라 3.3제곱미터 단위로 쓰이는, 쓸모 없는 단위가 될 것이다. 과연 앞으로 몇 년이 더 지났을 때 평이 사라질 지 두고 보자.

이 글은 본래 http://mearie.org/journal/2008/04/pyeong-is-not-dead에 썼던 것을 옮겨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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