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저널

옛 블로그를 보존하기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라면 내가 이런 저런 블로그들을 운영해 왔다는 것을 알 것이다. 대강 생각나는 대로 나열해 보면 처음에 엔비닷컴 쓰다가 sapzil.info 도메인에서 수정으로 블로그를 돌리고, 한동안 쉬다가 tokigun.net 도메인에서 다시 운영한 뒤 그도 귀찮아져서 티스토리를 조금 써 보다가 말았다.

2004년부터 써 오기 시작한 거니까 나름 많이 쓴 건데, 문제는 이들 블로그들이 열심히 쓸 때는 쓰다가 안 쓴 뒤로는 거의 방치 상태나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토끼군 작업실 3.0은 3년의 시간을 거쳐서 거의 모든 내용이 메아리로 옮겨 갔지만, 블로그는 도저히 손을 댈 수가 없어서 방치된 상태이다. 아직도 카운터가 잘 올라가는 걸로 봐서는 봇이 계속 방문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메아리 저널을 만들 때부터 이들 블로그를 모두 메아리에 통합시키려는 계획을 세웠다. 다행히도 엔비닷컴 블로그를 뺀 모든 블로그가 루리넷에서 돌아 가고, 엔비닷컴 블로그는 한참 옛날에 그 다음 블로그로 모두 옮겨 왔기 때문에 고유 링크를 유지하는 건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았지만, 글 내용을 보고 때려 치다시피 했다. 막장의 극치를 달리는 (그렇다, 그 때만 해도 그랬다!) HTML 마크업과 내용들 때문에 그냥 옮겨 왔다가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몇 달이 지난 지금 나는 다시 블로그 통합 작업을 시작하려고 한다. 이번에는 내용까지 새로 고쳐서 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는 김에 댓글 기능까지 만들어 버리려고 한다. (물론 이전된 글은 댓글을 더 이상 쓸 수 없다.) 그래서 일단 계획을 여기에 공포해 버린 다음에, 언젠가 때를 봐서(…) 마무리를 해 볼까 한다.

계획

  • 모든 블로그의 내용을 메아리 저널로 통합한다.
  • 내용을 모두 검토해서 문제가 있는 부분은 수정한다. 물론 수정한 내용은 수정했다고 표시할 예정이다. 아마 이 과정에 시간이 매우 많이 걸리지 않을까 싶다.
  • 수정의 plain 포맷으로 쓰여진 글을 모두 HTML화한다. 내가 글만 줄창 써 댄 게 많기 때문에 이 과정은 검토 과정에서 같이 하면 될 듯.
  • 깨진 링크를 모두 기계적으로 체크해서 대체 링크를 찾는다.
  • 옛날 블로그의 카테고리는 모두 적절한 태그로 변환한다. (이 과정은 검토에서 같이 해야 한다.) 또한 ‘옛 블로그 (sapzil.info)’ 등의 태그를 달아서 출처를 표시한다.
  • sapzil.info에 있던 엔비닷컴 블로그 백업 표시는 모두 삭제한다. 더 이상 가치가 없는 정보이다.
  • 모든 과정이 끝나면 루리넷에 있는 두 개의 수정 블로그는 싹 삭제한 뒤 redirection만 해 주는 스크립트로 대체하고, 티스토리는 글을 수동으로 수정해서 링크로 옮긴다.

…과연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옛날 글들이 올라오는 것 같으면 아 그런가보다 하시면 되겠다.

이유

이왕 오랜만에 글 쓰는 거 하나 더 얘기하기로 하자. 그럼 왜 옛날 블로그를 보존하는가? 아니 그보다 옛날 블로그에 뭐가 볼 게 있다는 건지 말씀하시는 분도 계실 것 같다.

나에게는 초등학교 시절에 써 놓았던 일기장 뭉치가 있다. 나랑 비슷한 세대거나 그 이전 세대를 산 사람들은 초록색 일기장을 본 기억이 있을 것 같은데, 초등학교 1학년부터 시작한 그 일기장부터 한/글을 배우고 컴퓨터로 쓰기 시작한 6학년의 일기까지 대략 열댓권 되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일기라는 게 나중에 보면 좋지만 쓰기는 귀찮지 않은가. 중학교 이후로 나는 일기를 쓰지 않았고 그 시절의 기억은 사실상 소실되고 말았다.

고등학교 때 나 혼자 쓸 수 있는 노트북1이 생긴 뒤로 나는 어떤 형태로든 기록을 하는 습관이 생겼다. 또한 그 때까지 용케도 남아 있는 하드디스크 자료들을 보존하고, 자료가 있으면 무조건 어딘가에 저장을 해 놓게 되었다. 그 자료가 비록 한 번도 들춰 보지 않을 자료라 하더라도 사라져가는 내 기억을 보조할 그 자료들이 사라진다는 건 두려웠기 때문인 것 같다.

한편으로 IRC를 쓰면서부터는 블로그에 쓸 내용을 그냥 채팅으로 해 버리는 습관이 생겨 버렸는데, IRC에는 항상 접속되어 있고 로그도 자동 기록되기 때문에 굳이 내가 의식하지 않아도 저장이 된다는 점이 좋았고, 내가 말하는 내용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정보가 분산(-_-;) 저장될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사람들과 얘기를 하는 이유는 소통의 욕구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더 이상 기억하지 못 하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는 것도 있달까.


  1. 그리고 이 노트북은 뭐 잘 아시겠지만 썰매(노트북 표면이 심하게 긁혀서 “썰매 타고 다니셨나요”라는 말을 여러번 들은 뒤 생긴 별명)가 되어 현재 집 구석에 박힌 채 서버 노릇을 하고 있다.

이 글은 본래 http://mearie.org/journal/2008/08/keeping-old-blogs에 썼던 것을 옮겨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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